검색결과 : 국립세종도서관
상세검색 닫기
자료유형
본문언어
출판년도 ~
정렬
상세검색 +

자료검색

검색결과

  • 홈으로
  • 검색결과
글씨 글씨 확대 글씨 축소
내면기행 : 옛사람이 스스로 쓴 58편의 묘비명 읽기 / 지은이 : 심경호
내면기행 : 옛사람이 스스로 쓴 58편의 묘비명 읽기 책표지
  • ·표제/책임표시사항 내면기행 : 옛사람이 스스로 쓴 58편의 묘비명 읽기 / 지은이 : 심경호
  • ·발행사항 서울 : 민음사, 2018
  • ·형태사항 766 p. ;20 cm
  • ·주기사항 권말에 원문수록
    참고문헌: p. 743-766
  •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37436697  03810 : \25000 
  • ·분류기호 한국십진분류법-> 810.9  듀이십진분류법-> 895.709  
  • ·주제명 묘비명[墓碑銘]한국 고전 문학[韓國古典文學]문학 평론[文學評論]
권별정보 자료위치출력 관심도서 보기 관심도서 담기

※ 좌우로 스크롤하시면 내용이 보입니다.

권별정보 안내
신청 편/권차 편제 저작자 발행년도 등록번호 청구기호 자료있는 곳 자료상태 예약자 반납예정일 매체구분
지은이: 심경호 2018 SE0000394388 810.9-18-8 인문예술자료실(서고) 서고 비치(온라인 신청 후 이용) 0 - 인쇄자료(책자형) 
지은이: 심경호 2018 SE0000394389 810.9-18-8=2 인문예술자료실(서고) 서고 비치(온라인 신청 후 이용) 0 - 인쇄자료(책자형) 
지은이: 심경호 2018 SE0000405850 810.9-18-8=3 인문예술자료실(서고) 서고 비치(온라인 신청 후 이용) 0 - 인쇄자료(책자형) 
※ 신청 종류
- 대출예약신청:
자료상태가 ‘대출중’인 경우 해당 도서를 예약하여 도서 반납 시 우선적으로 대출받을 수 있는 서비스
- 청사대출신청:
정부세종청사(6-3동, 2-1동)에 위치한 무인예약도서대출반납기에서 도서 수령‧반납이 가능한 서비스
- 무인대출신청:
도서관 1문(정문)에 위치한 무인예약도서대출기에서 도서 수령이 가능한 서비스
- 서고자료신청:
서고에 보관된 자료에 대한 열람신청 서비스 이용방법: 로그인 → 자료검색 → [상세정보] 클릭 → 권별정보에서 자료 선택 →[서고자료신청] → 자료비치완료 문자 수신 → 해당 자료실에서 자료 수령
서가 둘러보기
서가둘러보기 로딩중

목차


책을 엮으며

1 현달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오래 살았다고도 할 만하다 ― 김훤, [자찬묘지(自撰墓誌)]
2 청풍명월을 술잔으로 삼아 장사 지냈다 ― 조운흘, [자명(自銘)]
3 나는 망명하여 도피한 사람이다 ― 조상치, [자표(自表)]
4 시끌시끌한 일일랑 도무지 긴치 않다 ― 박영, [묘표(墓表)]
5 [감군은] 곡을 늘 타다가 천수를 마쳤노라 ― 상진, [자명(自銘)]
6 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 남은 것은 흙뿐 ― 이홍준, [자명(自銘)]
7 시름 가운데 즐거움 있고 즐거움 속에 시름 있도다 ― 이황, [자명(自銘)]
8 대의가 분명하기에 스스로 믿어 부끄러움이 없다 ― 노수신, [암실선생자명(暗室先生自銘)]
9 시신을 소달구지에 실어 고향에 묻어 다오 ― 성혼, [묘지(墓誌)]
10 벼슬에는 뜻을 끊고 농사에 마음을 기울였다 ― 송남수, [자지문(自誌文)]
11 느긋하고 편안하게 내 명대로 살았다 ― 홍가신, [자명(自銘)]
12 나 홀로 나를 알 뿐 ― 권기, [자지(自誌)]
13 죽은 뒤에나 그만두리라 ― 이준, [자명(自銘)]
14 담백하고 고요하게 지조를 지켰노라 ― 김상용, [자술묘명(自述墓銘)]
15 그 비루함이 나를 더럽히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 윤민헌, [태비자지(苔扉自誌)]
16 슬픔과 탄식 없이 편안한 삶을 누렸도다 ― 한명욱, [묘갈(墓碣)]
17 뜻은 원대하지만 명이 짧으니 운명이로다 ― 금각, [자지(自誌)]
18 대부가 직분을 유기했다면 장사 지낼 때 사(士)의 예로 한다 ― 이식, [택구거사자서(澤?居士自敍)]
19 인간의 모든 계책은 그림자 잡으려는 것과 같다 ― 김응조, [학사모옹자명병서(鶴沙?翁自銘幷序)]
20 서른을 넘긴 뒤로는 다시는 점을 치지 않았다 ― 박미, [자지(自誌)]
21 허물을 줄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 허목, [자명비(自銘碑)]
22 몸이 한가롭기에 일 또한 한가롭다 ― 이신하, [자지문(自誌文)]
23 마음으로 항복하지 않겠다 ― 박세당, [서계초수묘표(西溪樵?墓表)]
24 이것이 거사가 반생 동안 겪은 영욕이다 ― 이선, [지호거사자지(芝湖居士 自誌)]
25 뒤뚱뒤뚱 넘어지고 큰 재앙이 이어져 놀라웠을 뿐 ― 유명천, [퇴당옹자명(退堂翁自銘)]
26 노새 타고 술병 들고 나가서 돌아오는 것을 잊었다 ― 남학명, [회은옹자서묘지(晦隱翁自序墓誌)]
27 감암에서 야위는 것이 마땅하다 ― 이재, [자명(自銘)]
28 선영 아닌 딴 곳에 장사 지낸다면 눈을 감지 못하리라 ― 김주신, [수장자지(壽葬自誌)]
29 이처럼 살다가 이처럼 죽어, 태허로 돌아가니 무어 걸릴 것 있으랴 ― 박필주, [자지(自誌)]
30 입조한 30년 동안 좌우에서 돕는 자가 없었다 ― 이의현, [자지(自誌)]
31 슬픈 일이 반이고 웃을 일이 반이다 ― 권섭, [자술묘명(自述墓銘)]
32 허물과 모욕이 산처럼 쌓여 있다 ― 유척기, [미음노인자명(渼陰老人自銘)]
33 뼈야 썩어도 좋다 ― 김광수, [상고자김광수생광지(尙古子金光遂生壙誌)]
34 화합을 주장하던 내가 세상의 죄인이 되었다니 ― 원경하, [자표(自表)]
35 재주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노닐었다 ― 남유용, [자지(自誌)]
36 천명을 즐기거늘 무엇을 의심하랴 ― 조림, [자명병서(自銘幷序)]
37 어리석다는 평은 정말 말 그대로가 아니랴 ― 임희성, [재간노인자명병서(在澗老人自銘幷序)]
38 으레 그러려니 하며 웃어넘겼다 ― 강세황, [표옹자지(豹翁自誌)]
39 나 죽은 뒤에 큰 비석을 세우지 말라 ― 서명응, [자표(自表)]
40 사람됨이 보통 사람보다 못했다 ― 정일상, [자표(自表)]
41 나 역시 세속적인 것을 면치 못했다 ― 조경, [자명(自銘)]
42 갈아도 닳지 않는 석우가 있다 ― 오재순, [석우명(石友銘)]
43 행적이 우뚝하고 마음이 허허로워 탕탕한 사람이 아닌가 ― 김종수, [자표(自表)]
44 기쁨과 슬픔을 헛되이 쓰려 하지 않았다 ― 유언호, [자지(自誌)]
45 깨닫고 보니 죽음이 가깝다 ― 유한준, [저수자명(著?自銘)]
46 썩은 흙과 함께 스러지리라 ― 이만수, [자지명(自誌銘)]
47 이름이나 자취나 모두 스러지게 하련다 ― 신작, [자서전(自敍傳)]
48 나라의 은혜를 갚으려면 먼저 제 몸을 지켜야 한다 ― 남공철, [사영거사자지(思潁居士自誌)]
49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고 곱게 다듬으려 했다 ― 정약용,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광중본(壙中本)
50 산다는 것이 이처럼 낭비일 뿐이란 말인가 ― 서유구, [오비거사생광자표(五費居士生壙自表)]
51 올해의 운이 가 버렸구나 ― 서기수, [자표(自表)]
52 전형이 여기서 인몰될까 두렵다 ― 유정주, [자지(自誌)]
53 남들은 나를 늙은 농사꾼으로 대해 주지 않는다 ― 이유원, [자갈명(自碣銘)]
54 백 세대 뒤에라도 옹의 실질을 알리라 ― 김평묵, [중암노옹자지명병서(重庵老翁自誌銘幷序)]
55 문을 닫아걸고 의리를 지켰다 ― 전우, [자지(自誌)]
56 나라가 망하자 사흘 동안 흰옷을 입고 슬픔을 표했다 ― 김택영, [자지(自誌)]
57 행적의 글을 스스로 지어 후손에게 밝힌다 ― 유원성, [모옹자명(帽翁自銘)]
58 일본의 신민이 될 수는 없소 ― 이건승, [경재거사자지(耕齋居士自誌)]

보론  자찬묘비ㆍ묘지와 자찬만시
원문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