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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페이지 내용 : 내 인생의 도서관 작가 정여울의 도서관 예찬 자유와 상상으로 일구는 꿈의 공간 내 인생의 첫 번째 도서관은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 있었던 도서관이다. 초중고교 시절, 집에 있는 책을 다 읽어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을 때, 혼자 공부하기 싫을 때, 나는 도서관에 가곤 했다. 도서관에서는 책과 함께 신문과 잡지를 읽을 수 있어서 더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한껏 자라나곤 했다. 지금처럼 어린이·청소년용 도서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냥 어른들의 책을 읽는 것 에 익숙했다. 모르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거나 그 뜻을 상상해보면서 보 낸 모색의 시간들이 지금까지도 내 삶에 영향을 미친다. 빌린 책 제일 뒷면에 있는 도서대출카드를 보며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을까?’ 하고 상상해보는 일 또 한 재미있었다. 그다음으로 도서관과 친해진 시기는 대학교 학년 때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4 할 지 막막하고 외롭고 힘들었던 그 시절, 나는 도서관과 친구가 되었다. 학생들이 열심히 취업이나 고시 준비를 하는 열람실이 아니라,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는 오래된 책이 쌓인 자료실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다. 일요일에도 도서관에 가서 혼 자 앉아 있으면 잡념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대학원 입학시험 준비를 하면서 도서 관과 더욱 친해졌는데, 시험을 위해 달달 외워야 하는 책들이 다행히도 내가 좋아 하는 문학책들이라서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로 시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시기는 대학원을 다니면서부터였다. 그때는 국회도서관을 자주 이용했 다. 도서관에 있으면 온갖 잡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앞날 에 대한 불안도 눈 녹은 듯 사라지곤 했다.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무 언가를 공부하는 그 시간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는 법을, 나는 도서관에서 배웠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책은 결국 서점에 가서 사게 되었다. 한 번 읽 고 끝내기에는 너무도 아쉬운 책, 오래도록 간직해두고 싶은 책을 고르는 법도 도 서관에서 배웠다. 내가 처음으로 책 한 권 분량의 긴 글을 써본 것은 석사 논문을 쓸 때다. 그때 내 막 힌 생각의 물꼬를 터준 것도 바로 도서관이었다. 당시 나는 신채호, 박은식, 유원 표의 글을 모아 분석하고 있었는데, 유원표의 《몽견제갈량》을 제대로 분석하기 어 려워 애를 먹고 있었다. 1908년에 나온 《몽견제갈량》을 복사본으로만 보다가 처 음으로 원본을 찾아 읽었다. 책을 오래도록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한 장 한 장 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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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페이지 내용 : 겨보기도 하고, 인형처럼 꼭 안아보기도 했다. 급기야 오래 도서관, 리버풀 도서관, 버밍엄 도서관, 맨체스터 도서관…. 된 책 냄새를 맡으며 코를 킁킁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옆 사 모두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추억의 장소가 되어주었 람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연구하는 대상 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낯선 도시들이 친밀한 장 의 살아 있는 물질성을 깨달았다. 책을 쓴 사람의 온기와 열 소로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정이 100년 이상의 시간을 가로질러 내게로 건너왔다. 책 마지막으로, 자유로운 몽상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다. 많 物性 의 ‘물성 ’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체험이었다. 논 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너무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사용하 문의 중간 지점에서 꽉 막혀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는데, 그 려 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은 반드시 무언가 특별한 존재 날 국회도서관에 갔다 오고 나서야 논문이 술술 풀리기 시 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과 다른 삶을 상상해보는 자유 작했다. 의 틈새를 찾아내는 것에 있지 않을까. 이제 더 이상 학생이 아닌 나는 또 다른 이유로 도서관을 더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동안, 타인의 시선에 시달리던 욱 좋아한다. 먼저 강연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다. 작가 내가 비로소 진정한 나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가 된 뒤 여러 곳에서 인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강의를 하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미래를 뛰어넘어 우 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다. 문화센터나 리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시간, 나의 삶을 뛰어넘어 타인의 학교도 물론 좋지만, 도서관에서는 수업 출석이나 행사 참 삶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바로 그런 자유 가 때문이 아니라 정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로운 상상의 틈새를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도서관을 새로 만날 수 있었다. 전국의 여러 도서관에 강연을 하러 갈 때마 운 꿈의 공간으로 일구어낼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다 느끼는 점은 평생교육의 장으로서 도서관의 역할이 시간 글 정여울(작가) 이 갈수록 중요해진다는 점이다. 도서관에서는 아직도 눈이 해맑게 빛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엄마 손을 꼭 붙잡고 나온 아들딸들도 모두 내 강의를 열심히 들어준다. 학교에 서 배울 수 없는 것들, 학교를 졸업했지만 더욱 깊이 공부하 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공간 으로서 도서관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는 요즘이다. 작가 정여울은 다음은 여행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다. 몇 년 전부터 나 문학평론가로도 활동중이다.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는 여행할 때 꼭 그 지역의 도서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 수상한 바 있다. 《소리내어 읽는 즐거움》 무리 작은 도시라도 도서관이 있는 곳은 삶의 특별한 온기가 《공부할 권리》 등을 썼다. 느껴졌다. 특히 한겨울에는 그만한 안식처가 없었다. 박물 국악방송 라디오에서 〈정여울의 책이 좋은 밤〉을 관과 함께 내가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이 도서관이었다. 대영 진행했다. 3

탐 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