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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페이지 내용 : 과수원에서 마종기 시끄럽고 뜨거운 한철을 보내고 뒤돌아본 결실의 과수원에서 사과나무 한 그루가 내게 말했다. 오랜 세월 지나가도 그 목소리는 내 귀에 깊이 남아 자주 생각난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땅은 내게 많은 것을 그냥 주었다. 봄에는 젊고 싱싱하게 힘을 주었고 여름에는 엄청난 꽃과 향기의 춤. 밤낮없는 환상의 축제를 즐겼다. 이제 가지에 달린 열매를 너에게 준다. 남에게 줄 수 있는 이 기쁨도 그냥 받은 것, 땅에서, 하늘에서, 주위의 모두에게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중략) 오랜 세월 지나가도 그 목소리는 내 귀에 깊이 남아 자주 생각나기를 세상이 언제 초록이었냐는 듯 짙은 녹음도 빛이 바랬다. 뜨거운 폭염과 세찬 빗방울, 벌레들과 새들의 합창으로 시끌시끌했던 과수원에는 시원한 바람이 분주하게 오간다. 둥글고 빨간 열매, 풍요로운 결실을 마주하며 화자는 자연의 섭리를 다시 생각한다. 사과나무로 현현한 자연의 목소리는 겸허하다, ‘땅과 하늘로부터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이 열매조차 내 것이 아니다. 네게 주어 다시 가벼워지겠다.’ 주는 것이 바로 사는 길이라는 음성에 꼭 움켜쥐었던 손이 움찔거린다. 이제 나, 너, 우리를 향해 그 손을 펴면 어떨까. 나만의 빨갛고 둥근 열매를 들고서. 이 계절, 광주리 안의 사과가 예사롭지 않다. ISSN 2288-9442 발간등록번호 11-1371546-000001-08 호수가 보이는 도서관은 홈페이지 sejong.nl.go.kr에서도 구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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