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책갈피 추가
페이지

2페이지 내용 : 내 인생의 도서관 시인 장석주의 도서관 연가 오늘도 내게 일용할 양식을! 나는 대 초반 무렵 서울의 한 시립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돈도 없고 갈 데도 마땅치 않은 청년이 20 찾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도서관이었다. 나는 시립도서관에서 온갖 종류의 책들을 읽었다. 아침에 가서 저녁 무렵까지 거기 머물며 빈둥거리다가 돌아오는 날들도 있었다. 어쨌든 어깨 너머로 환한 햇 빛이 쏟아지던 참고열람실에 앉아 책을 펼치면 내면은 금세 고요로 충만해지곤 했다. 책의 펼친 양면 을 물들이던 그 환한 빛과, 책을 읽는 동안 내면을 풍요롭게 하던 고요가 정말 좋았다. 무엇보다도 책 읽 기를 좋아했지만, 책을 집중해서 읽는 동안 영혼을 갉아먹는 불안이 만드는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나는 과연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게 그때의 불안이고 걱정거리였다. 나는 날마다 빈둥거리며 무위도식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백수건달로 생을 마치고 말 것이란, 내 의식을 파고들던 불길한 생각들과 싸웠다. 내게 도서관은 도피처이자 은신처, 돈이 들지 않는 놀이터, 박물적 지식이 쌓인 창고였다. 나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인 말라르메, 랭보, 발레리의 시집들을 찾아 읽거나, 니체와 하이데거와 바슐라르의 어깨 너머로 환한 햇빛이 쏟아지던 참고열람실에 앉아 책을 펼치면 내면은 금세 고요로 충만해지곤 했다. 책의 펼친 양면을 물들이던 그 환한 빛과, 책을 읽는 동안 내면을 풍요롭게 하던 고요가 정말 좋았다. 책들을 집중해서 읽었다. 어디 그뿐인가. 내 지적 능력으로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책들을 책상 위에 쌓 아놓고 읽어나갔다. 그 책들을 읽으며 간간이 푸른 노트에 시를 끼적이고, 어설픈 비평 문장들을 써 내 려갔다. 결국 그 시립도서관의 참고열람실에서 쓴 시와 문학 평론이 몇 해 뒤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내 젊은 날의 추억이 깃든 곳은 서울 종로구 화동에 있던 경기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그 터에 세워진 정독도서관이다. 그 시절 정독도서관은 아침 일찍 나가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사십여 년 뒤 나는 작가로 그 시립도서관의 강연 초청을 받았다. 강연이 끝나고 청중의 질문도 잇달았다. 내게는 여러모로 가슴이 벅찬 의미심장한 경험이었다. 2

페이지
책갈피 추가

3페이지 내용 : 젊은 날 나는 왜 그토록 책에 바쳤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했는데, 그는 도서관을 천국으로 상상한다. 그는 일용할 양 사십여 년 동안 끊임없이 책을 읽어왔다. 낭인으로 시립도 식을 구하듯이 하늘의 도서관에서 읽어야 할 책들을 한 바구 서관 주변을 떠돌던 사십 년 전이나 전업 작가로 삶을 꾸리 니씩 내려 달라고 기도한다. 그에게 책은 날마다 먹어야 할 는 지금이나 나는 책을 기적의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한 위 양식이었다. 영국의 비평가 콜린 윌슨은 17세에 정규 학력 대한 지성은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전선도 필요 을 끝냈다.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그는 도서관에서 엄 없고, 배터리도 필요 없고, 스위치나 버튼도 전혀 필요 없으 청난 책들을 섭렵하며 독학자로서의 이력을 쌓았다. 그는 며, 간단하고 휴대 가능하며, 벽난로 앞에 앉아서도 사용할 반년은 노동을 하고, 나머지 반년은 국립도서관에서 책을 수 있다.” 읽고 글을 썼다. 마침내 《아웃사이더》란 매혹적인 평론집을 어디 그뿐인가? “각각의 종이 하나는 수천 비트의 정보를 써내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른다. 그에게 도서관은 최고의 담고 있다. 그 종이들은 제본이라 일컬어지는 우아한 보호 대학이고, 도서관을 채운 장서들 한 권 한 권은 훌륭한 가르 장치에 의해 정확한 순서로 한데 묶여 있다.”(움베르토 에 침을 베푸는 교수들이었다. 코, 《책으로 천 년을 사는 방법》) 책은 수저나 포크와 마찬가 도서관의 서가를 가득 채운 책들을 바라볼 때 내 눈동자는 지로 제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물건이다. 그것의 도움 갈망으로 타오른다. 나는 세상의 모든 도서관들을 사랑한 으로 나는 무른 영혼이 단단해진 덕에 교도소나 들락거리는 다. 세상의 도서관들이 베푼 책을 읽을 수 있는 지복들, 그 평 한심한 인간으로 전락하지 않고, 근사한 책들을 써내고 저 화와 안식들을 떠올리면 이것은 얼마나 지당한가. 나는 세 작권료로 쌀과 부식을 사고 의료보험료와 공과금을 내며 살 상의 모든 도서관들이 베푸는 은덕을 입었다. 그 시절 도서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다. 관을 향하던 내 발걸음은 얼마나 가볍고, 심장은 설렘으로 책을 좋아하는 모두가 다 훌륭한 인격자가 되는 것은 아니 얼마나 빨리 뛰었던가! 나는 오래전부터 제주도에 작은 여 다. 못 말리는 독서광 중에 독재자도 있고, 독재자에게 협력 행자 도서관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젊은 시절 도서관 한 전쟁광도, 선량한 이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사기꾼이나 이 내게 기쁨과 보람을 주었듯이, 책을 사랑하는 미지의 젊 잡범도 있다. 그러나 훌륭한 사람들은 대개는 한때 뛰어난 은이들에게 그것들을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다. 독서광이었다. 세기 최고의 소설가 중 하나로 꼽히고, 아 글 장석주(시인) 20 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지낸 보르헤스는 “나는 늘 낙원을 정원이 아니라 도서관으로 생각했어요”라고 고백한다. 그 는 평생 독서광으로 살았는데, 말년에 눈이 멀었던 때조차 시인 장석주는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와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책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해 독서를 이어갔다. 그는 도서관 통해 등단한 뒤 시인, 소설가, 문학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을 낙원이자 젖을 먹여주는 어머니라고 상상했다. 독학으로 조선일보·출판저널·북새통 시학자가 된 뒤 《몽상의 시학》 《공간의 시학》 따위를 쓰고 나 등에서 ‘이달의 책’ 선정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다양한 북 리뷰를 중에 소르본 대학의 교수로 활동한 가스통 바슐라르 역시 독 기고해왔다. 저서로 시집 《오랫동안》과 산문집 서광이었다. 그 역시 보르헤스와 마찬가지로 도서관을 사랑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고독의 권유》 등이 있다. 3

탐 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