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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페이지 내용 : 실제로 조상들은 고대 마한 시절부터 파종이 끝난 5월에 모여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밤낮없이 놀았다고 한다. 이러한 풍습은 모내기법이 개발된 뒤에도 이어졌으며,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오늘날의 단오를 만들었다. 외할아버지 댁으로 향하던 그날의 날씨는 유난히 화창 했다. 손잡이를 열심히 돌려 1세대 빨간색 프라이드의 뻑뻑한 창문을 열자, 어릴 적부터 줄곧 맡아 온 두엄 냄 새가 콧구멍으로 들이쳤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그 구수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니, 물을 댄 논에 줄지 어 늘어선 연녹색 모가 하늘하늘 손을 흔들며 귀성객 을 반기고 있었다. 드넓은 논을 바라보며 “날씨 좋다!” 라고 외치던 어머니의 환한 웃음이 눈에 선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음에도 그날 의 일만큼은 유달리 또렷하다. 가끔씩 마을을 찾는 이방인에 게 선선히 손을 흔들어 준 마을 사람들은 이내 저마다 하고 있 던 무언가에 집중했다.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서는 고운 모 래로 만든 씨름판에서 마을 장정들이 이리저리 굴렀고, 그 반 대편에서는 큰 나무에 동아줄을 엮어 만든 그네가 아낙네들에 게 웃음을 선물했다. 어르신들이 대나무로 엮은 부채를 들고 나와 이웃들에게 선물하고 다녔다.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입 은 사물놀이 패는 요란하게 장단을 맞추며 하루 종일 온 마을 을 순회했다. 도회지에서 자란 도시 촌놈은 영문을 알 수 없어 외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머리칼을 세 차게 쓰다듬은 할아버지의 흥분 섞인 목소리가 손자의 고막을 울렸다. “암, 무슨 날이고 말고. 오늘은 단옷날이란다!” 조상들의 ‘워라밸’, 단오 글. 강진우 문화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서성호 그땐 그랬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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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페이지 내용 : 왜 우리 가족이 그날 그곳에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부 모님은 일상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신명과 흥을 마음껏 뽐냈고, 분위기에 취한 나도 덩달아 신나게 놀았다. 고소하면 서도 쌉쌀한 수리취떡과 함께 뇌리에 선명하게 남은 장면은 뒤뜰의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는 모습이었다. 대 추가 풍성하게 열리기를 기원하는 이른바 ‘대추나무 시집 보 내기’ 풍습이었지만,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어른들의 행 동을 열심히 따라 했다. 내가 그 무리에 끼어 있다는 것만으로 도 신기하고 즐거웠던 하루였다. 어설프게나마 집안 어른들의 단오를 경험해 본 사람으 로서 말하건대, 단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임이 틀림 없다. 실제로 조상들은 고대 마한 시절부터 파종이 끝 난 5월에 모여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밤낮없이 놀았다 고 한다. 이러한 풍습은 모내기법이 개발된 뒤에도 이 어졌으며,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오늘날의 단오를 만들었다. 모내기는 참 고되다. 요즘에는 모심는 농기계가 널리 보급돼 있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사람이 직접 장화를 신고 논에 들어가 내내 허리를 굽힌 채 모를 한 줄기씩 심어야 했다. 땡볕 아래에서 그 고된 노동을 성실하게 해냈으니, 단옷날 하루쯤은 농사와 근심 걱정을 모두 내려놓고 마음껏 즐길 자격이 충분 하다. 요컨대 단오는 농사짓는 이들의 ‘워라밸’이었던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살다 보니, 요즘 단오는 예전 분위기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단옷날을 모두의 축제 로 승화시킨 행사들이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그 중 강릉단오제는 2005년 11월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등재된 데다가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 램도 함께 열리니, 단오가 끼어 있는 6월을 맞아 가족 나들이 를 다녀와도 좋을 듯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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