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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페이지 내용 : 1964년 한 제과회사가 최초로 내놓은 이 간식 꾸러미는 주전부리는 고사하고 끼니를 챙기기조차 쉽지 않았던 꼬마들에게 ‘입 호사’를 선사했다. 어린이날은 21세기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먹고살기 바 빴던 산업화 시대에도 어린이날은 엄연히 존재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했지만, 모든 게 귀하던 때였기에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 했다.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선물은 누가 뭐래도 과자종합선물세트다. 1964년 한 제과회사가 최 초로 내놓은 이 간식 꾸러미는 주전부리는 고사하고 끼니를 챙기기조차 쉽지 않았던 꼬마들에게 ‘입 호사’ 를 선사했다. 과자종합선물세트가 큰 인기를 끌자 다른 제과회사들도 앞다퉈 자사의 제품으로 구성된 세트를 마련했다. 각 회사의 선물세트마다 과자 구성이 달라 서, 어린이날이 되면 동네 친구들과 골목길 한편에 둘 러앉아 이 회사 저 회사의 과자를 함께 나눴던 기억이 생생하다. 맛이며 모양이며 지금 과자보다 투박했지만, 이른바 ‘추억 보정’ 때문인지 지금껏 그때만큼 맛있는 간식을 찾지 못했다. 지금은 너무 흔한 공책, 필기구 등의 학용품도 어린이날의 단 골 선물이었다. 그중 가장 인기 있었던 선물은 단연 크레파스 다. 도화지나 담벼락에 형형색색의 크레파스로 쓱쓱 그림을 소박하지만 푸르렀던 그때의 어린이날 글. 강진우 문화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서성호 그땐 그랬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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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페이지 내용 : 그리면 아기 코끼리가 신나게 춤을 췄고, 크레파스 병정들은 나뭇잎을 타고 놀았다. 머릿속에서는 상상력이 만들어 낸 동 화 한 편이 펼쳐졌는데, 그 주인공은 단연 ‘나’였다. 한바탕 그 림 놀이를 즐긴 다음에는 크레파스가 닳을세라 고이 책상 서 랍 안쪽에 넣어 두고 다음번에 그릴 그림을 구상하며 남몰래 잠을 설쳤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당시 6개 구단은 야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어린이 회원 모집에 열을 올렸다. 회 원으로 가입하면 야구 모자, 점퍼, 유니폼, 사인 볼, 연 필, 팬 북 등을 증정했는데, 5월 6일에 이 야구복을 입고 등교한 아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짜장면 한 그릇 값이 500원 하던 시절에 5천 원에서 1만 원의 가입비를 내야 받을 수 있는, 요즘 말로 ‘잇템’이었으니 당연한 일 이었다. 그날 집에 와서는 나도 야구단 어린이 회원을 하고 싶다며 부모님께 생떼를 쓴 아이들이 한둘이 아 니다. 자식이 갖고 싶다는 걸 선뜻 못 사 주는 부모의 심정이 어땠을까. 다 큰 이제야 가슴이 먹먹하다. 80년대를 지나 살 만해지면서 바깥나들이에 나서거나 외식을 하는 집이 점점 늘어났다. 외식 메뉴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지 나 경양식집의 돈가스와 패밀리 레스토랑의 소고기 스테이크 로 바뀌었다. 각지의 동물원과 놀이동산마다 어린이날을 즐겁 게 보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로봇, 인형, 블록, 게 임기, 자전거 등 선물의 종류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워졌다. 이렇듯 우리 사회가 풍요로워지는 모습은 기쁘 지만, 반대로 어린이날의 의미는 조금씩 퇴색되는 것 같아 아 쉽다.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라는 말과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 환은 1924년 한 신문 사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의 어린 이는 떡이나 고운 옷은 받아보았으나, 참으로 따뜻한 사랑과 공경은 받은 적이 없다. 중략 어린이를 물욕의 마귀로 만들 고 싶지 않다. 중략 돈보다도 과자보다도 신성한 동화를 들 려주시오.” 그때도 지금처럼 어린이날을 그저 ‘아이에게 선물 주는 날’로 여기는 어른들이 있었나 보다. 물론 물질적인 선물 도 좋지만, 아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가족과 함께 보내는 즐거운 하루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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