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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페이지 내용 : 한바탕 뛰고 나면, 운동장 나무 그늘 아래 펼쳐진 돗자리마다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김밥, 치킨, 족발 등 평소에는 구경하기 힘들었던 음식들이 찬합마다 가득 들어차 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기분 좋은 두근거림으로 밤잠을 설치는 날 이 있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운동장을 누빌 생각에 들떴고, 학부모들은 자식과 친구들에게 먹일 음식을 푸짐하게 마련하 느라 새벽잠을 반납했다. 행여나 비라도 오면 어쩌나, 그날만 큼은 일기예보를 유심히 들여다본 뒤에야 겨우 한숨 돌리고 눈을 붙였다. 운동회 전날은 이렇듯 평소보다 바쁘고 피곤하 지만 그렇다고 누구 하나 찡그리는 이 없는, 일 년 중 몇 안 되 는 날이었다. “국민체조, 시작!” 누군지 모를 아저씨의 우렁찬 목소리 가 운동장에 울려 퍼지면, 나란히 선 학부모와 아이들 은 경쾌한 박자에 맞춰 몸을 풀었다. 청군, 백군으로 나 뉜 전교생들은 저마다 속한 팀에 맞는 색깔의 띠를 머 리에 질끈 동여맸다. 하늘이 청명하고, 새가 지저귀고, 햇살이 따스하고, 모두가 활기차게 체조를 하는 중에도 묘한 긴장감이 아이들 사이를 맴돌았다. 자신이 속한 팀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겠다는 일종의 전의였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펼쳐지는 응원전은 운동회의 분위기를 예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몇 주 전부터 다 함께 짠 응원 구호와 동작을 펼치다 보면 어느새 심장이 힘차게 뛰었 다. 그 여세를 몰아 신발 멀리 날리기, 공 굴리기, 기마전 등이 온 동네를 하나로 만든 운동회의 낭만 글. 강진우 문화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서성호 그땐 그랬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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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페이지 내용 : 곳곳에서 펼쳐졌는데, 학부모들도 경기에 참여한 아이들의 굵 은 땀방울과 이를 구경하는 아이들의 힘찬 응원에 잔뜩 사기 가 고무되곤 했다. 이때쯤 되면 기다렸다는 듯 학부모가 참여 하는 2인3각 달리기, 줄다리기 등이 시작됐다. 아이들의 운동 회가 온 동네의 축제로 거듭나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오전 내내 한바탕 뛰고 나면, 운동장 나무 그늘 아래 펼쳐진 돗자리마다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김밥, 치킨, 족발 등 평소에는 구경하기 힘들었던 음식들이 찬합마다 가득 들어차 있었다. 학부모들이 밤새 준비한 운동회 먹거리였다. 옆자리 가족들과 서로 없는 음식을 물물교환하기도 했고, 간혹 학부모가 오지 못한 아이가 보이면 제 자식처럼 챙기며 기꺼이 자리를 내어 줬다. 그야말로 잔칫날이 따로 없었다. 경기와 경기 사이의 뜨는 시간에는 저학년 아이들의 재롱 잔 치가 펼쳐졌다. 운동회 공연의 고전인 꼭두각시와 부채춤부터 최신 곡에 맞춘 나름대로의 군무까지, 저마다 열심히 준비한 무대를 보고 있노라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공연을 준비했을 아이들에게 우렁찬 박수 가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청군과 백군의 점수 차이가 초반부터 확 나는 경우는 거의 없 었다. 대부분 오후 일정 중반까지 종이 한 장 차이로 엎치락뒤 치락했다. 오자미 게임과 이어달리기는 이 치열한 승부의 승 패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종목이었다. 오자미를 열심히 박에 던져 먼저 터트리면, 그 팀 아이들 전체가 너 나 할 것 없이 “만 세!”를 외쳤다. 박에서 나온 총천연색 종이 꽃가루가 이들의 승리를 축하했다. 한편 이어달리기는 으레 학년별 대표 6명이 선수로 나섰는데, 한 살 차이에도 달리기 기량이 현저하게 차 이 나는 나이대이기에 릴레이 전략을 잘 짜야 했다. 주자가 종 종 바통을 놓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팀에 관계없이 장탄식 이 쏟아졌다. 이윽고 마지막 주자 중 한 명이 먼저 결승선을 통 과하는 그 순간, 운동회의 승리 팀이 결정됐다. 환호와 아쉬움 이 교차했지만, 누구 하나 승패에 연연하지 않았다. 운동회의 진정한 승자는 하루를 알차게 즐긴 우리 모두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 운동회에는 지금처럼 VR기기와 같은 첨단 기술은 없 었지만,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낭만이 있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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