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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페이지 내용 : 일회용 카메라 하나당 촬영할 수 있는 사진은 27장. 그러니 요즘처럼 아무 때나 셔터를 마구 누를 수 없었다. 딱 한 번의 기회이기에 신중에 신중을 더했다. 친구들과 함께 교실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설레었던 수학여행 전날, 우리는 으레 사진관으로 향했다. 그 시절 필름 카메라는 주요 재산 목록에 포함될 만큼 고가였기 에 집안에서 유일하게 아버지만이 만질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과의 진한 우정과 특별한 추억을 사진으 로 남기지 않을 순 없는 일. 결국 일회용 필름 카메라가 유일한 선택지였다. 하교 후 교복을 입고 사진관에 들러 “일회용 카메라 하 나 주세요!” 하면, 사진관 아저씨는 웃는 얼굴로 “내일 이 00고 수학여행 날이지?” 하며 카메라를 턱 내밀었 다. 몇천 원을 건네고 구입한 물건이지만, 사실상 그 카 메라는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 안에 어떤 장면들이 담기게 될지 기대하고 또 기대하며 밤을 하얗게 지샜 으니. 일회용 카메라 하나당 촬영할 수 있는 사진은 27장. 그러니 요 즘처럼 아무 때나 셔터를 마구 누를 수 없었다. 장소를 옮길 때 마다 사진을 함께 촬영할 사람과 배경을 고심한 뒤에야 필름 이송 레버를 조작했다. ‘드르륵’ 소리가 몇 번 난 다음 뷰파인 더로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눌렀다. 그곳에서, 그 구도로 찍을 수 있는 딱 한 번의 기회이기에 신중에 신중을 더했다. 아날로그의 매력이 듬뿍 담긴 그 시절의 카메라 글. 강진우 문화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서성호 그땐 그랬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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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페이지 내용 : 그렇게 27장의 사진을 모두 촬영한 뒤, 일회용 카메라를 통째 로 사진관에 맡겼다. 사진이 인화되어 나오기까지의 34일 동 안 촬영 순간의 기억에 온갖 상상이 덧붙었다. 두근거리는 마음 으로 인화한 사진을 학교에 들고 가서 친구들과 함께 돌려 보며 깔깔대며 웃었고, 전지에 사진을 붙인 뒤 추가로 인화해 가지고 싶은 사람의 번호를 적게 했다. 필름 카메라에는 이렇듯 기다림 과 나눔의 낭만, 신중함과 설렘의 미학이 담겨 있었다. 찍은 사진이 바로 인화되어 나오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에도 특 유의 맛이 있었다. 필름 카메라 대비 인화 화질이 떨어지지만 카메라에서 나온 필름을 팔랑거리면서 흔드는 감성이 나름 괜 찮았다. 도리어 필름 카메라 대비 낮은 화질이 일종의 ‘뽀샤시 한’ 포토샵 효과를 불러와서, 주로 연인들이 폴라로이드 카메 라를 즐겨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한편 사진을 둘러싼 하얀색 베젤은 그 자체로 액자처럼 느껴져서 때때로 집 안 인테리어 의 일부를 담당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찍은 폴라로이드 사 진들을 노끈에 빨래 널듯이 줄줄이 걸고 흐뭇하게 웃으며 감 상했던 순간은 지금 되짚어 봐도 가슴이 따스해지는 소중한 추억이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필름 카메라와 폴라로이드 카메라 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들었다. 이들은 왜 디지 털의 한가운데에서 철 지난 아날로그를 찾아 나선 것 일까. 뉴트로 열풍, 개성을 중시하는 가치관 등 여러 가 지 분석이 있지만, 무한정 생산과 복사가 가능함에도 정작 중요한 ‘무언가’는 남지 않는 디지털 시대의 특성 이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먼지 뒤집 어쓴 책장 속 앨범은 때마다 다시 꺼내어 보지만, 이상 하게도 언제 어디서든 불러내기 쉬운 스마트폰 속 디 지털 앨범에는 딱히 손이 안 가지 않던가.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아날로그와 필름 카메라는 여전히 존 재 가치가 충분하다. 아니, 아무리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더라 도 이들에 대한 향수와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지난 수천 년간 아날로그 속에서 살며 구성된 인간의 DNA가 불과 수십 년 만에 재조합될 일은 없으니 말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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