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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페이지 내용 :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시골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 가족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곧 고기반찬과 각종 전이 가득한, 푸짐한 밥상이 차려졌다. 새 옷이 귀하던 시절의 한가위는 연휴 일주일 전부터 시작됐다. “얘들아, 추석빔 사러 가자!” 하는 어머니의 한마디에 후다닥 옷을 챙겨 입고 현관 앞에 서 있으면, 어머니는 우리를 보고 웃으시며 “그렇게 좋아?”라고 말 씀하셨다. 사실 어머니도 우리가 필요했다. 시장에서 시골집에 가져갈 음식거리를 잔뜩 사야 하는데, 어머니 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도움 이 되는 꿍꿍이를 품고 함께 간 시장은 그야말로 북새 통이었다. 길을 지나다니기조차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 았지만, 누구 하나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북적거림 또한 추석의 맛이었기에. 조카들에게 줄 만 원짜리 신권을 은행에서 넉넉하게 찾아온 아버지는 추석 명절 첫째 날 호기롭게 운전대를 잡았다. 하지 만 온 나라의 도로가 꽉꽉 막히는 명절 대이동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0시간을 넘기기가 부지기수였다. 고속도로가 뱀처럼 늘어선 주차장이 되어 운전자와 가족들이 지쳐갈 무렵, 갓길로 차를 빼라는 어머니의 수신호가 떨어졌 다. 식사 시간이었다. 트렁크에는 어머니가 전날부터 푹 삶은 닭백숙이 압력솥째 실려 있었다. 길바닥이라고 체면 차릴 일 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고기를 뜯고 있으면 차들이 주변 갓길 에 하나둘씩 멈춰 섰고, 각자 싸 온 음식을 눈치껏 교환하는 고 속도로 잔치가 벌어졌다. 아스팔트의 열기를 그대로 받으면서 먹는 그 음식들이 어찌나 맛있던지. 한가위만 같았던 그 시절의 한가위 글. 강진우 문화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서성호 그땐 그랬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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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페이지 내용 :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시골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가 우리 가족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곧 고기반 찬과 각종 전이 가득한, 푸짐한 밥상이 차려졌다. 상을 물린 뒤에는 송편 빚기 대회가 개최됐다. 할머니는 바 구니에 든 재료를 펼치며 손자들의 경쟁심을 은근히 자극했다. “송편 예쁘게 빚는 사람은 나중에 예쁜 딸을 낳는단다!” 딱히 딸을 낳을 생각은 없었지만, 할머니에 게 예쁨받고 싶어 풋콩, 깨, 밤 등의 소를 넣고 최대한 예쁘게 빚었던 기억이 난다. 시루에 담긴 송편은 솔잎 이불을 덮은 채 은은한 솔내음을 퍼트리며 익어갔다. 한가위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새벽 일찍 벌어지는 차례였다. 증조할아버지의 위패를 중심으로 갖가지 제기 위에 음식을 올 린 차례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항 렬이 높은 순으로 두 번 절하며 이만큼 자손을 번성하게 해 주 신 은덕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차례를 지낸 뒤 아침밥을 먹 은 가족들은 조상들의 묘소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절을 하고 주변에 자란 풀들을 베어 내며 따끔하면서도 기분 좋은 가을 햇살로 광합성을 하면 차례를 지내며 다소 가라앉았던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다음 날 펼쳐질 귀경길은 귀성길 못지않게 힘 들 터였지만, 매년 으레 그랬으니 별걱정은 없었다. 남은 하루 동안 친척들과 함께 즐길 윷놀이와 화투, 추석 특선 영화와 산 같이 쌓인 맛 좋은 음식에 마냥 행복했다. 추석 연휴가 오면 여전히 귀성길, 귀경길 시간과 날씨를 알려 주는 뉴스가 연이어 나오지만, 오랜만에 친지들과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고속도로보다 공항과 유명 관광지가 더 붐빌 정도였으니, 세월만큼이나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변한 모양이다. 물론 연휴 를 맞아 여행이나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을 나쁘게 말할 생각 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시골집에 대가족이 모여 북적 거리는 추석의 추억을 경험한 사람 중 한 명인 만큼, 추석의 풍 경이 빠르게 변하는 지금이 조금은 아쉬울 따름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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